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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는 외국 사람들이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살면서 사람들을 만나 보니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하게 됩니다.

생각도 비슷하고, 자녀를 기르는 것도 유사합니다.

신앙생활에서는 더 보수적인 사람들도 많이 만납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4)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유대인은 선민이고 이방인은 버림받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을 저주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은 직접 만나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생각하는 관점과는 다르게

이방인을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고 난 다음 깨달은 것은

이방 땅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 중에도 의를 행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방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4-45)

 

복음이 증거될 때 성령님이 모인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임했던 동일하신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간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방인에게 동일하신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그곳에서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기로 작정합니다.

세례는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는 예식입니다.

이것은 통해 이방인을 예루살렘 교회가 받아주게 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형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공포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땅 끝에 있는 이방인에게까지 가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곳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은 유대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르다고 생각하면 만날 수 없습니다.

부정한 이방인에게 유대인이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이 부정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보니 그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동일하게 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 그리스도인과 유대 그리스도인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일한 복음을 받았고, 동일한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이방 교회와 유대 교회를 나눌 수 없습니다.

함께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같으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같은 성령, 같은 세례를 받았으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같은 복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교단, 교회가 더 크기에 다르다고 합니다.

비본질적인 작은 차이를 말하며 같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교회는 거대한 자유주의 신학에 도전받고 있습니다.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런 세력과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같은 복음을 가진 성도, 교회, 교단은 같이 가야 합니다.

 

같은 복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기 원합니다.

하나 됨을 방해하는 비본질적인 것을 배격하기 원합니다.

복음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고 축복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하나 되며

이준우 목사 올림

 

<적용 및 실천>

1. 하나가 되는 것은 단순합니다.

2. 같은 복음을 가지고 같은 성령님을 모시면 됩니다. 그러면 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하나 됨이 아닌 본질적은 하나 됨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하나 됨의 축복과 기쁨을 누리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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