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여 달라고 합니다.
보면 확실하다고 믿습니다.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합니다.
장사꾼들은 물건을 보여주면서 팝니다.
물건을 보고 확인해야 살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보려고 합니다.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보여주시던지 하나님을 음성을 듣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제자들을 인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묻는 도마에게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6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보았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8)
예수님의 말씀에 빌립에 묻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빌립은 하나님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보았다고 하자 질문한 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9-10)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곧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요 15:4-5)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내가 주안에 있으면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말씀하시고 감동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삶의 열매가 주님께서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신실한 형제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신실한 자매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립에게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십니다.
보여 달라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신실한 형제 자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헛것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을 보며 살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원합니다.
주님의 역사가 나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분명히 보기 원합니다.
오늘 나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보기 원합니다.
편지나 카톡, 이메일로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이렇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오늘 나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오늘 그것을 하는 날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보기 원하며…